법원의 냉정한 판결, 1년의 침묵: 뉴진스와 민희진이 증명한 2가지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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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 30일, 법원은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었던 걸그룹 뉴진스와 소속사 어도어 간의 분쟁에서 ‘전속계약은 유효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지난 1년간 K-pop 산업 전체를 뒤흔들었던 이 거대한 공방은, 법리적으로는 다소 싱겁게도 ‘계약 유지’라는 결론으로 일단락되었다.

뉴진스
출처: 스타뉴스

사실 이 판결은 대부분의 업계 관계자들과 법조인들이 예상했던 결과이기도 하다. 법원은 민희진 대표가 어도어의 대표이사직에서 해임되었다는 사정만으로 뉴진스 멤버들을 위한 어도어의 매니지먼트 업무에 치명적인 공백이 발생했다거나, 어도어가 그 업무를 수행할 계획이나 능력이 없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법의 잣대는 냉정하고 명확했다. 감정이나 관계가 아닌, 서류상의 계약과 그 이행 가능 여부가 핵심이었다.

하지만 이 법적 공방을 단순히 ‘계약 분쟁’으로만 치부하기에는, 지난 1년의 시간이 담고 있는 무게가 너무나도 무겁다. 이 사건은 법정의 냉정한 논리 너머, K-pop 산업의 구조적 모순과 그 안에서 분투하는 아티스트의 ‘신념’, 그리고 크리에이터의 ‘의리’라는, 훨씬 더 복잡하고 인간적인 가치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냉혹한 사회’의 벽과 ‘존중받아야 할 뉴진스의 신념’

뉴진스

이번 판결을 두고 일각에서는 ‘역시 세상은 만만치 않다’는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다. 특히 K-pop 산업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최정상 걸그룹 멤버 전원의 ‘집단행동’에 대해 “나이 어린 멤버들이 사회의 냉혹함을 알게 될 것”이라며 그들의 선택을 ‘치기 어린 반항’으로 혹평하는 이들도 있었다. 법의 논리, 자본의 논리 앞에서 아티스트의 의지란 얼마나 무력한가를 보여주는 사례로 남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물론 그들의 비판에도 일리는 있다. 현대 상업 예술에서 ‘계약’이라는 시스템이 갖는 무게는 절대 가볍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은 ‘왜 그들이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외면한다.

개인적으로 뉴진스의 팬으로서, 그들이 좀 더 원하는 세상과 환경에서 아티스트 활동을 자유롭게 이어나가기를 바랐기에 이번 판결에 깊은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그 아쉬움과는 별개로, 우리는 뉴진스 멤버들이 감내한 1년이라는 긴 공백의 의미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그들은 커리어의 정점에서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했다. 이는 단순한 불만 표출이나 즉흥적인 반항이 아니었다. 그들이 옳다고 믿는 ‘신념’을 지키기 위한, 가장 절박하고도 강력한 방식의 의사 표현이었다. 1년이라는 시간은 그들의 신념이 일시적인 감정이 아님을 증명하는 시간이었다.

젊은 날에는 누구나 각자가 옳다고 믿는 이상적인 세상과, 발을 딛고 선 실제 세상 사이의 거대한 괴리감에 고통받는다. 어떤 이는 그 차이 앞에서 좌절하고 방황하며, 어떤 이는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또 어떤 이는,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지 않되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범위 내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을 감행한다.

뉴진스 멤버들의 선택은 세 번째에 해당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창조적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법적 절차라는 시스템 안에서 가장 격렬한 방식으로 저항했다. 법원은 그들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지만, 그들이 자신들의 신념을 위해 모든 것을 걸고 행동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신념을 1년간 지켜왔다는 그 뚝심은 ‘어리다’는 말로 폄하될 수 없는,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젊음의 권리 그 자체다.

‘가스라이팅’ 의혹을 소멸시킨 ‘1년간의 동행’

출처: 경향신문

이번 사태의 또 다른 중심축인 민희진 프로듀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사태 초반, K-pop 역사상 전무후무한 성공 신화를 쓴 그의 프로듀서로서의 역량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논란의 핵심은 ‘템퍼링’ 의혹, 즉 그가 뉴진스 멤버들을 의도적으로 부추겨 현 소속사와의 관계를 파탄 내고 자신과 함께 독립하려 했다는, 이른바 ‘가스라이팅’ 의혹이었다.

만약 그 의혹이 사실이었다면, 민희진 대표는 법적 분쟁 과정에서 어떻게든 멤버들을 빠르게 ‘구출’하여 자신의 통제 하에 두고 새로운 활동을 모색하는, 지극히 상업적인 행보를 보였을 것이다. 그것이 ‘템퍼링’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그는 대표이사직에서 해임되고 법적 공방을 치르는 가장 절박한 순간에도, 뉴진스 멤버들과의 ‘창조적 관계’ 외에 다른 것을 도모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뉴진스와 함께 가장 고통스러운 ‘1년간의 공백기’를 고스란히 함께 겪어냈다. 그는 뉴진스 없는 ‘프로듀서 민희진’을 증명하려 하지 않았고, 뉴진스 역시 ‘민희진 없는 뉴진스’를 거부했다.

이 ‘1년간의 동행’이야말로 그를 둘러쌌던 모든 의심을 소멸시키는 가장 강력한 증거가 되었다. 그 긴 침묵의 시간은, 그와 뉴진스의 관계가 비즈니스 효율이나 가스라이팅으로 빚어진 것이 아니라, 상호 존중과 신뢰에 기반한 ‘창조적 공동체’이자 ‘의리’의 관계임을 역설적으로 증명해냈다. 그는 경영인이기 이전에 프로듀서였고, 그 본질을 1년의 멈춤을 통해 스스로 입증한 셈이다.

냉정한 판결 속에서 찾아낸 ‘나름의 의미’

결국 법원의 판결은 냉정했다. 뉴진스는 법적으로 어도어에 남아야 하며, 이는 그들이 원치 않았던 환경에서의 활동 재개를 의미할 수도 있다. K-pop 산업이라는 거대한 기계는, 톱니바퀴 하나가 잠시 멈췄다 하더라도 다시금 냉정하게 돌아가기 시작할 것이다. 팬으로서의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난 1년의 투쟁과 오늘의 판결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단순한 ‘패배’의 기록이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냉정한 판결 속에서도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이번 사건은 K-pop 아티스트가 더 이상 기획사의 일방적인 지시를 따르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자신들의 정체성과 신념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집단행동까지 감행할 수 있는 ‘주체’임을 선언한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억될 것이다. 또한 한 명의 천재 프로듀서가 자본의 논리가 아닌, 아티스트와의 ‘의리’와 ‘창조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던 투쟁의 기록으로도 남을 것이다.

법원은 계약서의 유효함을 선언했지만, 뉴진스와 민희진은 그보다 더 중요한 ‘서로의 유효함’을 증명해냈다. 뉴진스 멤버들의 빛나는 젊은 신념과 민희진의 굳건한 의리를 재확인하는 이 지난한 기회 앞에서, 법원의 판결문은 어쩌면 가장 차가운 현실을 적시한 종이 한 장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들의 이야기는 이제 법정을 떠나, K-pop 산업의 미래와 아티스트의 권리라는 더 큰 담론의 장으로 옮겨가고 있다.

slowbur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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