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블루’를 진단하다
세상의 속도가 임계점을 넘어선 듯하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가 한국 시장에 26만 장의 GPU 공급을 약속한 순간, 이는 단순한 반도체 거래를 넘어 한국의 AI 산업이라는 거대한 엔진에 고옥탄가 연료를 쏟아붓는 신호탄이 되었다. 언어모델(LLM)부터 시작해 각국의 기술 주권을 상징하는 ‘소버린 AI’, 그리고 현실 세계와 조우하는 ‘피지컬 AI’와 로보틱스에 이르기까지, 모든 전선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향한 가속도가 붙고 있다.

이러한 거대한 흐름의 중심에는 이재명 대통령이 AI를 국가 전략 산업으로 천명하고 인프라 확충에 공격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 강력한 정책적 드라이브가 자리하고 있다. 거시 경제의 불확실성 속에서도 한국의 관련 주식은 전 세계적인 상승 추세를 아랑곳하지 않고 놀라운 급등세를 연출 중이다. 시장은 열광하고, 미디어는 연일 ‘특이점’에 가까워진 미래를 설파한다.
그러나 이 눈부신 스포트라이트가 밝을수록, 그 뒤편에 드리워지는 그림자 또한 짙어지는 법이다.
필자와 같이 한국의 상품을 해외로 수출하는 동시에 프로그램 개발을 병행하는, 소위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경계’에 선 이들에게 이 시대의 환호는 아이러니하게도 공허한 이명(耳鳴)처럼 들릴 때가 있다. 세상은 이토록 바삐 돌아가는데, 나 혼자만 구시대의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제자리를 맴도는 듯한 느낌. SNS 피드를 가득 채운 AI 관련 성공 신화와 ‘넥스트 빅 씽’을 외치는 구루(Guru)들의 모습은, 마치 화려한 파티장 창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는 듯한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준다.
현재 AI는 분명 전문가의 영역이다. 하지만 우리는 직감적으로 안다. 이 기술이 머지않아 물이나 공기처럼 일상에 스며들어, 우리가 인지하지도 못하는 사이 삶의 작동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것이라는 사실을.
이 거대한 변화의 조류에서 ‘나’만 소외되고 있다는 불안감. 내가 가진 기술과 경험이 내일이면 무용해질지 모른다는 조바심. 그리고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을지 모른다는 무력감.
우리는 이 복합적이고 새로운 형태의 우울감을 ‘AI 블루(AI Blue)’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AI 블루, FOMO를 넘어선 존재론적 불안

AI 블루는 단순히 ‘유행에 뒤처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FOMO, Fear of Missing Out)’과는 그 결이 다르다. FOMO가 ‘참여하지 못함’에서 오는 사회적 유실감이라면, AI 블루는 ‘대체될 수 있음’에서 오는 존재론적 위기감에 가깝다. 이는 개인의 심리를 넘어, 우리가 수 세기 동안 쌓아 올린 ‘인간 지성’의 가치 체계가 흔들리는 현상이다.
AI는 대규모 데이터를 학습해 패턴을 찾고 인간과 유사한, 혹은 그 이상의 답을 ‘생성’해낸다. 이 명제는 곧, 지금까지 인류의 고유 영역이라 믿었던 지능, 경험, 창의성에 기반한 수많은 분야가 알고리즘으로 대체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몇 가지 유사하지만 다른 개념들과 AI 블루를 비교하며 그 실체를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첫째, ‘기술적 실업(Technological Unemployment)’에 대한 고전적 공포다. 산업혁명기 러다이트(Luddite) 운동이 기계에 의한 육체노동의 대체를 두려워했다면, AI 블루는 ‘정신노동’과 ‘창의적 노동’의 대체를 목도하는 데서 오는 공포다. 변호사, 의사, 회계사는 물론, 프로그래머와 아티스트까지. ‘전문직’이라는 성역이 무너지는 광경은, 내가 평생 쌓아온 지식과 기술의 ‘유통기한’이 다했음을 통보받는 것과 같다.
특히 필자와 같이 프로그램 개발을 병행하는 이에게 이 불안은 더욱 첨예하게 다가온다. 코드를 짜는 행위 자체가 AI에 의해 자동화되는 것을 보며, ‘개발자’라는 정체성은 ‘AI를 활용하는 오퍼레이터’로 격하될지 모른다는 불안에 휩싸인다. 내가 지금 만들고 있는 이 상품 수출 솔루션이, 몇 달 뒤 AI 에이전트가 단 몇 분 만에 구축해내는 시스템보다 비효율적인 구시대의 유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무력감을 증폭시킨다.
둘째, ‘가면 증후군(Imposter Syndrome)’의 확장판이다. 가면 증후군이 자신의 성공을 운이나 타인의 공으로 돌리며 스스로를 사기꾼처럼 느끼는 심리라면, AI 블루는 ‘인간 전체’가 AI라는 압도적 지능 앞에서 가면을 쓴 존재처럼 느끼게 만든다. 내가 밤새워 고민해 내놓은 전략적 판단이나 창의적 아이디어가, 사실은 AI가 수 초 만에 분석해낼 수 있는 ‘데이터 패턴의 조합’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 이는 인간 지성의 고유성을 스스로 불신하게 만든다.
셋째, 앨빈 토플러가 ‘미래의 충격(Future Shock)’에서 예견했던 ‘과잉 자극’과 ‘변화의 속도’ 문제다. 그러나 AI가 가져온 충격은 단순히 ‘빠른 것’을 넘어 ‘방향을 예측할 수 없는’ 특성을 지닌다. 어제까지 각광받던 모델이 오늘 새로운 모델에 의해 폐기되고, 학계의 정설이 하룻밤 사이 뒤집힌다. 일반인은 물론 전문가조차 이 속도를 따라잡기 벅차다. 한국처럼 정부 주도하에 전 사회가 AI로의 전환을 가속화하는 환경 속에서, 이 속도에 탑승하지 못한 개인은 ‘낙오자’ 혹은 ‘비효율적인 존재’로 규정되는 듯한 압박을 받는다.
‘대체’의 공포에서 ‘의미’의 질문으로

AI 블루의 가장 깊은 근원은 ‘존재론적 두려움’이다.
“결국 지금까지 인류의 지능과 경험에 기대었던 많은 분야들은 AI로 대체될 것이다. 인간은 인간 본연의 존재 의미에 대해서 더욱 고민하게 될 것이고 존재론적인 실험을 더 다양한 방식으로 하게 될 것이다.”
이는 AI 블루의 핵심을 관통한다. AI가 두려운 진짜 이유는 일자리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경제적 공포를 넘어,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강제로 우리 앞에 소환하기 때문이다.
과거, 인간은 ‘이성’을 통해 다른 동물과 구별되었고, ‘도구’를 사용해 환경을 지배했다. 하지만 AI는 인간보다 더 뛰어난 ‘이성적’ 판단을 내리고, 스스로 ‘도구’를 만들어내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AI로 대체 불가능한 ‘인간 본연의 존재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
우리는 ‘효율성’과 ‘생산성’이라는 근대적 가치관의 정점에서 AI라는 존재를 만났다. 만약 인간의 가치가 ‘얼마나 더 빠르고 정확하게 문제를 해결하는가’에 있다면, 우리는 AI와의 경쟁에서 필패할 운명이다. 이러한 프레임 속에서 인간은 ‘비효율적이고 오류가 잦은’ 존재로 전락하며, AI 블루는 피할 수 없는 시대적 증후군이 된다.
필자가 느끼는 우울감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오히려 가장 인간적인 반응이다. 이는 세상의 변화를 민감하게 감지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좌표를 재설정하려는 영혼의 고통스러운 몸부림이다. SNS 속 주인공들은 AI라는 파도의 가장 높은 곳에서 서핑을 즐기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들 역시 파도의 방향이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불안을 안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 ‘AI 블루’를 병리적인 우울증으로 치부하고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적 전환기가 우리에게 던지는 ‘신호’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세상은 바삐 돌아가는데 나 혼자 제자리에 있는 듯한 느낌. 그것은 ‘멈춰 선’ 것이 아니라,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탐색하는 ‘멈춤’일 수 있다. AI가 인간의 지능과 경험을 학습해 답을 만든다면, 우리는 이제 그 답이 아닌 ‘질문’을 던져야 할 때다. AI가 ‘어떻게(How)’의 영역을 잠식한다면, 인간은 ‘왜(Why)’의 영역을 더욱 깊이 파고들어야 한다.
AI 블루는 우리에게 묻고 있다.
‘생산하는 존재’가 아닌 ‘의미를 찾는 존재’로서,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이 우울하고도 근원적인 질문이야말로, 우리가 AI 시대를 헤쳐 나갈 가장 강력한 나침반이 될 것이다. (1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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