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너무나 깊숙이 파고들어와 우리의 감정을 격렬하게 흔드는 드라마들이 있습니다. 보고 있는 동안의 몰입은 물론이고, 드라마가 끝난 후에도 긴 여운과 함께 왠지 모를 먹먹함과 힘겨움을 안겨주는 작품들. 배우 이선균과 아이유(이지은) 주연의 드라마 “나의 아저씨”는 제게 그런 드라마였습니다. 완결된 작품을 선호하는 성격 탓에 한번 시작한 드라마는 끝을 봐야 하는 저에게, “나의 아저씨”는 본건 그냥 우연일 뿐 이었습니다.

오랜만에 찾은 고향 부산에서의 휴식, 그 무료함 속에서 우연히 선택한 드라마였습니다. 하지만 재생 버튼을 누르는 순간, 저는 그 섬세하고도 날카로운 이야기에 깊숙이 빨려 들어갔습니다.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 나 대신 운전대를 잡은 동생 몰래 눈물을 훔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흐르는 눈물을 감추려 소리조차 낼 수 없어 더욱 힘들었던 그 시간 속에서, 저는 “나의 아저씨”의 강렬한 감정의 파고에 온전히 잠겨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비슷한 감정의 깊이를 지녔을 거라는 막연한 두려움에 아직 아이유(이지은), 박보검 주연의 “폭삭 속았수다”는 감히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나의 아저씨”는 방영 당시뿐만 아니라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많은 이들에게 ‘인생 드라마’로 손꼽히며 깊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국내는 물론 해외 팬들까지 사로잡은 이 작품의 힘은 과연 무엇일까요?
삶의 무게, 그 짊어짐에 대한 연대

드라마는 팍팍한 현실 속에서 각자의 고독과 불안을 짊어진 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건설회사 부장 박동훈(이선균)은 회사의 암투 속에서 위태로운 상황에 놓이고, 어린 시절 부모에게 버려지고 빚에 시달리며 고독한 삶을 살아가는 이지안(아이유/이지은)은 차갑고 거친 세상 속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드라마를 통해 가수 아이유가 아닌 배우 이지은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가 연기한 이지안은 삶의 밑바닥에서 느껴지는 절망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특히 박동훈에게 느끼는 미묘한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해냈습니다. 마치 원래 그런 고독하고 힘겨운 삶을 살아온 사람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역할에 완벽하게 몰입한 연기였습니다.
여기에 이선균 배우 특유의 다소 어눌하게 느껴지는 듯하면서도 진심을 담은 발음과 깊은 눈빛은 박동훈이라는 인물의 내면적인 고뇌와 따뜻함을 고스란히 전달하며 시청자들에게 깊은 감정적인 울림을 선사했습니다. 두 배우의 섬세한 연기 앙상블은 드라마의 몰입도를 극대화하며, 보는 이들의 마음을 깊숙이 파고들었습니다.
안타깝기만 한 이선균의 부고

이선균 배우의 갑작스러운 부고는 너무나 안타깝고 슬픈 소식이었습니다.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통해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울림을 주었던 그가 더 이상 새로운 작품으로 우리 곁에 함께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습니다. 연예인, 공인이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그가 감당해야 했을 무게는 과연 얼마나 컸을까요. 어린 시절 엄마에게 혼나듯, 잘못한 만큼만 꾸짖고 따뜻하게 안아줄 수는 없었던 걸까요. 무엇이 그를 그토록 힘겹게 했을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어 더욱 마음이 아픕니다.
드라마에는 박동훈과 이지안 외에도 각자의 삶의 무게를 짊어진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박동훈의 형 박상훈(박호산)과 동생 박기훈(송새벽)은 현실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가족애를 잃지 않으려 애쓰고, 박동훈의 아내 강윤희(이지아)는 남편과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갈등합니다. 이처럼 드라마는 주변부 인물들의 삶 또한 깊이 있게 조명하며, 우리 사회의 다양한 단면들을 보여줍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무겁고 어두울 수 있는 이야기가 때로는 예상치 못한 유쾌함으로 표현된다는 것입니다. 등장인물들 간의 툭툭 던지는 대화 속에서, 서로를 향한 챙김과 애정 속에서 피어나는 소소한 웃음은 드라마에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습니다. 그들이 서로의 삶의 무게를 함께 나누려는 모습은 보는 이들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나아가 ‘나도 좋은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따뜻한 마음을 품게 만듭니다.
나의 아저씨 – “어른이 되면, 좋은 일이 많아요?”
이지안의 이 질문은 드라마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된 현실 속에서 희망을 찾기 어려웠던 그녀에게 박동훈은 쉽게 “네”라고 답하지 못합니다. 대신 그는 묵묵히 그녀의 곁을 지키며, 어른으로서 세상의 어려움과 그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작은 위안들을 간접적으로 보여줍니다.
“나의 아저씨”는 단순한 드라마를 넘어,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과 그 속에서 피어나는 인간적인 연대를 깊이 있게 성찰하는 작품입니다. 삶의 고통과 슬픔, 그리고 그 속에서 발견하는 작은 희망과 위로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깊은 공감과 울림을 선사합니다.
여전히 “폭삭 속았수다”를 볼 용기가 나지 않지만, 언젠가는 그 드라마를 통해 또 다른 깊은 감동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의 아저씨”가 제게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부산에서의 짧았던 휴식처럼, 때로는 힘든 현실에서 벗어나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을 돌아보고 주변을 둘러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 드라마는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줍니다. 그리고 그 곁에는, 말없이 손을 잡아줄 수 있는 ‘좋은 어른’ 하나쯤 있다면,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조금은 덜 버겁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게 합니다.
“나의 아저씨”는 제게 단순한 드라마 이상의 의미로 남아있습니다. 힘든 시간을 위로해 주고,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며, 더 나아가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해 준 소중한 작품입니다. 오랫동안 제 마음속 깊이 자리하며, 때때로 꺼내어 보게 될 그런 드라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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