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한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뉴스 한 줄이 있었다. 캄보디아에서 한 한국 대학생이 피싱 조직에 연루되어 고문 끝에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단기간 고수익을 약속하며 해외로 유인한 불법 리크루팅 조직의 실체가 드러나자, 대중은 경악했고 분노했다.
그런데 이 비극적인 사건은 단순한 해외 범죄 피해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지금 한국 사회가 직면한 노동 가치의 붕괴, 그리고 ‘쉽게 돈 벌기’라는 유혹의 구조를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캄보디아, 단기간 고수익의 유혹 – 불안한 청춘의 그림자

피싱, 로맨스 스캠, 주식 리딩방 사기… 이제는 뉴스에서 너무나 자주 등장하는 단어들이다. 특히 20~30대 청년층이 여기에 연루되는 경우가 많다. 캄보디아 사건의 피해자 역시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하지만 SNS, 오픈채팅, 텔레그램을 통해 “한 달에 1000만 원 벌기 가능”, “단순 업무로 고수익 보장”이라는 달콤한 문구에 노출되면서 비극의 시작은 이미 예고되어 있었다.
한국 사회의 청년들은 지금 ‘미래가 보이지 않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고학력에도 불구하고 취업문은 좁고, 비정규직 비율은 높으며, 부동산 가격은 하늘을 찌른다.
“성실하게 일해서는 집 한 채 살 수 없다”는 체념이 퍼지면서, 노동의 가치는 급속히 희미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단기간 고수익’이라는 말은 일종의 마약처럼 들린다. 그것은 현실의 좌절을 잠시 잊게 하는 환상이다.
배금주의와 경쟁사회 – 노동이 아닌 돈이 중심이 된 시대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빨리빨리” 문화로 성장해왔다. 그 속도 중심의 사고방식은 경제성장을 가능하게 했지만, 동시에 “결과가 과정보다 중요하다”는 왜곡된 가치관을 낳았다. 그 결과, 이제 많은 사람들에게 ‘노동’은 더 이상 인간의 존엄을 실현하는 과정이 아니라, 단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
한국은 OECD 국가 중에서도 재산범죄 비율이 유독 높은 나라로 꼽힌다.
절도, 사기, 횡령, 배임, 손괴 등 재산과 관련된 범죄가 전체 범죄 중 차지하는 비중이 70%를 넘는다. 그 근저에는 ‘돈이 곧 성공의 척도’라는 사회적 병폐가 자리하고 있다. “돈을 얼마나 벌었느냐”가 “어떻게 살고 있느냐”보다 더 중요해진 사회, 그곳에서는 노동의 윤리나 과정의 정직함은 더 이상 경쟁력이 되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배금주의가 초래한 노동 가치의 붕괴다.
전통적 노동가치의 상실 – 손의 기술보다 클릭의 기술
한때 한국은 “손의 나라”였다. 수공업, 제조업, 장인정신이 사회를 떠받쳤다. 하지만 이제 손의 기술보다 ‘클릭의 기술’이 더 중요해졌다. 주식 차트, 코인 그래프, 온라인 마케팅, 그리고 SNS 트래픽이 새로운 자본의 언어가 되었다.
물론 시대는 변했다. 기술 발전은 불가피한 변화다. 문제는 그 변화 속에서 노동의 존엄이 함께 진화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노동이란 원래 인간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 세상을 변화시키는 행위다. 그러나 지금의 노동은 ‘속도’와 ‘효율’의 이름으로 인간의 의미를 제거하고 있다.
결국, 청년들이 “노력해도 안 된다”는 절망감 속에서 ‘한 방’을 노리게 된 것은 단순히 개인의 도덕적 문제라기보다 사회 구조의 왜곡된 결과물이다.
인공지능 시대, 노동의 형태는 변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AI), 자동화, 로봇 기술의 발전은 노동의 형태를 완전히 바꾸고 있다. AI는 이미 콘텐츠를 쓰고, 영상을 편집하고, 상담을 대체한다. 인간의 ‘노동’은 점점 더 감정적, 창의적, 관계적 영역으로 밀려나고 있다. 이 변화는 노동의 위기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기회이기도 하다.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인간의 가치는 여전히 존재한다.
공감, 책임, 신뢰, 창의, 그리고 윤리 — 이 다섯 가지가 앞으로의 노동을 정의하는 핵심 키워드가 될 것이다. 따라서 “어떤 일을 하느냐”보다 “어떤 태도로 일하느냐”가 노동의 질을 결정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노동’은 다시 인간의 존엄으로 돌아가야 한다
인공지능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다. 그것은 노동이 인간의 존재를 증명하는 과정이라는 사실이다. 캄보디아 사건에서 드러난 비극은 단지 ‘불법조직의 유혹’ 때문만이 아니다. 그 이면에는 ‘노동의 존엄이 사라진 사회’의 민낯이 있다.
정당한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
노동보다 돈이 더 신성시되는 문화,
그 속에서 청년들은 “노력의 무의미함”을 학습한다. 따라서 지금 한국 사회가 해야 할 가장 근본적인 성찰은 “어떻게 범죄를 막을 것인가”가 아니라 “왜 청년들이 그런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었는가”를 묻는 것이다.
다시 세워야 할 가치 – ‘노동의 미래’와 ‘삶의 행복’
노동의 미래를 이야기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속도’보다 ‘방향’이다. AI 시대의 노동은 더 이상 시간 투입의 문제가 아니라 ‘가치 창출의 방향성’의 문제다. 즉, 단순히 ‘얼마나 빨리’가 아니라 ‘무엇을 위해’ 일하는지가 중요한 시대다.
이 관점에서 본다면, 노동의 가치는 다시 인간 중심으로 회귀해야 한다. 청년 세대가 추구해야 할 것은 “단기간 고수익”이 아니라 “장기적 자아 실현”이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다움의 가치가 더 중요해진다. AI는 감정을 흉내낼 수는 있지만, 그 감정을 ‘진심으로 느끼는’ 존재는 오직 인간뿐이다.
노동의 복권, 인간의 회복
캄보디아의 비극적인 사건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불안정한 가치 위에 서 있는가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단기간의 돈, 효율, 성과 중심의 사회는 결국 인간을 소모품으로 만든다. 그러나 진정한 부(富)는 시간과 노력을 들여 가치를 쌓아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그 과정이야말로 인간의 존엄을 완성시키는 여정이다.
이제 우리는 물어야 한다.
“돈이 인간을 평가하는 시대를 계속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노동이 인간을 빛나게 하는 시대를 새롭게 만들어갈 것인가?”
인공지능 시대의 노동은 이미 시작되었다. 그러나 인간의 가치가 중심에 서지 않는 한, 그 어떤 기술도 우리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만들 수 없다. 노동의 의미를 되찾는 일, 그것이야말로 단기간 고수익의 유혹을 넘어, 지속 가능한 인간다운 삶으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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