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드게임 이후 5년, 슈퍼히어로는 여전히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가?

엔드게임 이후, 공백의 시간

슈퍼히어로

마블의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 슈퍼히어로 장르는 눈에 띄는 전환점을 맞이했다. 수많은 팬들이 열광했던 그 마지막 전투 이후, 히어로물의 열기는 다소 식은 듯한 분위기다. 물론 이 사이에도 흥행에 성공한 작품은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서사가 새롭게 쌓이는 과정 속에서 기대감보다는 피로감이 먼저 다가오는 것이 사실이다. 관객들이 영화를 소비하는 방식도 변했고, 코로나19 팬데믹을 지나며 극장의 존재감도 바뀌었다. 이 공백기 속에서 우리는 다시 질문을 던져보게 된다. 왜 우리는 슈퍼히어로를 사랑했는가? 그리고 지금도 그 사랑은 유효한가?

히어로의 본질은 ‘공감’이다

우리가 슈퍼히어로를 좋아하는 이유는 단지 그들이 초능력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다. 사실상 초능력은 이야기의 장치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싸운다는 점, 그리고 우리와 같은 내면의 갈등과 고뇌를 품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언맨은 외골격 슈트를 입은 억만장자지만, 동시에 트라우마와 죄책감에 시달리는 인간이었다. 스파이더맨은 건물을 뛰어다니는 히어로지만, 고모의 생계를 걱정하는 평범한 학생이기도 하다.

이런 설정은 관객으로 하여금 히어로의 세계에 쉽게 몰입하게 만든다. 우리는 자신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그들의 능력에는 경외심을 느끼지만, 그들의 고민과 상처에는 깊은 공감을 느낀다. 그래서 슈퍼히어로는 단순한 ‘판타지’의 산물이 아니라, 우리가 닮고 싶은 ‘이상’이자, 우리가 이미 겪고 있는 현실의 ‘은유’이기도 하다.

상상 속에서 현실을 돌아보다

슈퍼히어로 영화의 매력은 현실을 잠시 잊게 만드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초능력, 외계 전쟁, 미래 기술 등은 상상력을 자극하지만, 그 중심에는 늘 인간적인 주제가 있다. 책임, 상실, 선택, 연대, 희생—이 모든 것은 실제로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특히 슈퍼히어로는 ‘힘’과 ‘책임’의 상관관계를 통해 윤리적 질문을 던진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스파이더맨의 대사는 이 장르의 핵심을 간결하게 표현한 문장이다. 이는 기술이 발전하고, 개인의 영향력이 커지는 현대 사회에서 점점 더 중요해지는 화두이기도 하다.

트라우마에서 시작된 서사

많은 히어로들은 트라우마를 통해 각성하고, 그로 인해 영웅의 길을 선택한다. 배트맨은 부모의 죽음이라는 상처에서 정의감과 분노를 길러냈고, 스파이더맨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지 못한 후회에서 책임감을 배우게 된다. 아이언맨은 죽음 직전의 경험을 통해 자신이 가진 기술의 윤리적 책임을 인식하고 행동하게 된다.

이러한 개인의 상처는 단순히 캐릭터의 배경을 채우는 설정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속 상처와도 맞닿아 있다. 누구나 어떤 상처를 품고 살아가고 있고, 그 상처가 삶의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슈퍼히어로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그런 고통 속에서도 성장이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정의는 단순하지 않다

전통적인 히어로 영화는 명확한 선악 구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의 작품들은 점점 더 복잡한 도덕적 딜레마를 보여준다. ‘선’이라고 믿었던 행동이 때로는 누군가에게는 폭력이 되고, ‘악’으로 규정된 인물이 복수와 상처로 인해 그런 선택을 했음을 알게 된다. 「블랙 팬서」의 킬몽거나 「조커」의 아서 플렉 같은 캐릭터들은 악당이지만, 관객은 그들의 서사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복잡한 감정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모호한 경계는 오히려 현실에 더 가깝다. 세상은 흑백으로 나뉘지 않고, 수많은 회색지대가 존재한다. 슈퍼히어로 영화가 그런 복잡한 세계를 담아내는 방식은 단순한 오락을 넘어, 윤리적 사고와 공감의 폭을 넓히는 역할을 한다.

CG와 흥행의 딜레마

최근의 히어로 영화들이 비판받는 이유 중 하나는 반복되는 서사와 과도한 CG 사용이다. 대부분의 작품이 “힘을 얻고—갈등을 겪고—악당을 무찌르는” 구조를 따르고 있으며, 종종 진부한 대사와 클리셰에 기대게 된다. 여기에 CG가 과하게 사용되면 현실감이 떨어지고, 관객은 감정보다는 시각적 자극에 치우치게 된다.

물론 이 장르가 대중성과 상업성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임은 이해된다. 그러나 그로 인해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영화들이 설 자리를 잃는 것은 영화산업 전체의 다양성에 위협이 되기도 한다. 관객이 피로감을 느끼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팬덤과 커뮤니티의 힘

슈퍼히어로 영화는 단지 ‘보는 것’이 아니라 ‘참여하는 것’으로 확장되었다. 팬덤은 SNS, 커뮤니티, 팬픽, 코스프레, 리뷰 콘텐츠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세계관을 소비한다. 이는 「스타워즈」,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등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작품은 하나의 문화가 되고, 팬들은 이를 통해 정체성과 소속감을 공유한다.

유명 배우나 감독도 이 팬덤 속에 참여하기도 하고, 팬들의 요청이 실제로 작품의 방향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이러한 상호작용은 히어로 영화가 단순한 콘텐츠를 넘어, 현대의 집단 문화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기

히어로 영화의 본질은 결국 ‘공존’이다. 초능력을 가진 이들도, 평범한 사람들도 모두 사회 속에서 함께 살아가야 한다. 능력의 유무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사용되느냐가 중요할 뿐이다. 이 점에서 히어로는 언제나 고민한다. 자신이 가진 힘이 사회를 위한 도구가 될지, 파괴의 수단이 될지를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히어로의 행동을 통해 ‘나’의 역할을 되돌아본다. 내가 가진 재능, 기회, 혹은 작은 선택이 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영웅의 본질은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가에 있다. 이것은 곧 인간으로서 가장 숭고한 덕목이기도 하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히어로

최근의 히어로 영화는 인종, 성별, 성적 지향 등 다양한 정체성을 반영하려는 시도를 보이고 있다. 이는 기존의 일방적이고 백인 중심의 히어로 서사에서 벗어나, 보다 다층적인 세계를 구성하려는 노력이다. 「샹치」, 「이터널스」, 「미즈 마블」과 같은 작품은 그 대표적인 예다.

동시에 권력의 남용, 자원의 분배, 환경 문제와 같은 사회적 주제도 점점 더 주요한 서사로 등장하고 있다. 이는 히어로 장르가 단지 ‘현실 도피’가 아니라, ‘현실 성찰’의 기능을 함께 가지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기술, 그리고 인간성

급격한 기술 발전은 종종 ‘슈퍼히어로의 세계’를 현실로 만드는 듯한 착각을 준다. 인공지능, 유전자 편집, 로봇 기술—이 모든 것은 영화 속 상상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러나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우리는 그 속에서 인간성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맞닥뜨리게 된다.

히어로 영화는 이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한다. 우리는 단지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인간이 되어야 한다.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항상 책임, 연대, 그리고 사랑이 있다.

슈퍼히어로 영화는 궁극적으로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슈퍼히어로 영화는 궁극적으로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이들이 등장하지만, 그들이 겪는 갈등은 우리와 다르지 않다. 그리고 그들이 내리는 결정은 우리 삶에도 그대로 투영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능력을 가지고 있고, 각자의 삶에서 영웅이 될 수 있다.

히어로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가장 단순하고도 깊은 진리는 이것일지 모른다.
“힘에 도취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길을 가라.”
그리고 그 길은 반드시 누군가와 함께 하는 길이 되어야 한다.

slowbur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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