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쳐나는 이혼 콘텐츠 예능의 4가지 문제점

최근 한국 방송가에서는 ‘이혼’이라는 민감한 소재를 전면에 내세운 드라마와 이혼 콘텐츠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TV조선의 우리 이혼했어요 시리즈, ENA의 이혼남녀, KBS2의 우아한 제국, JTBC 이혼숙려캠프 등이 대표적이다. 동시에, 나 혼자 산다나는 SOLO결혼 말고 동거솔로지옥 등의 프로그램은 혼자 사는 삶, 비혼, 동거, 이성 간의 새로운 관계 방식을 조명하며 꾸준한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다.

이처럼 서로 상반된 듯한 이혼과 싱글라이프 콘텐츠가 동시에 주목받는 현상은 단순한 방송 트렌드를 넘어, 한국 사회의 급격한 가치관 변화와 맞닿아 있다. 가족 구조의 다변화, 개인주의의 확산, 자아 실현의 중요성 증대 등은 콘텐츠 제작 환경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으며, 시청자들의 선택 또한 그 흐름을 반영한다.

이혼, 더 이상 감춰야 할 일이 아니다

이혼 콘텐츠

과거의 한국 사회에서 이혼은 개인의 실패이자 가정의 해체로 여겨지며, 대중 앞에서 말하기 꺼리는 일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그러한 인식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이혼 콘텐츠가 주요 방송사의 황금 시간대에 방영되고, 시청자들은 그 속에서 ‘이혼 후의 삶’을 적극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이는 몇 가지 사회적 변화와 맞물려 있다.

첫째, 실제 이혼율의 증가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이혼율은 1990년대 후반 이후 꾸준히 증가해 왔으며, 최근에는 4쌍 중 1쌍이 이혼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특히 중장년층의 황혼 이혼, 자녀 출산 없이 결혼 후 1~3년 안에 이혼하는 ‘속전속결 이혼’ 등 다양한 형태의 이혼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이처럼 이혼이 더 이상 드문 일이 아니게 되면서, 그에 따른 콘텐츠 수요도 자연스레 증가하고 있다.

둘째,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의 해체다. 전통적으로 ‘아버지-어머니-자녀’라는 형태의 가족이 정상으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한부모 가정, 비혼 동거 커플,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1인 가정 등 다양한 가족 형태가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혼 콘텐츠는 이런 변화를 반영하며, ‘새로운 관계의 시작’, ‘자기 인생의 주도권 회복’이라는 긍정적인 메시지로 소비되기도 한다.

셋째, 감정노동에 대한 공감의 확산이다. 이혼 예능은 단순한 스캔들이 아닌, 결혼 생활 속에서의 갈등, 외로움, 불만족, 책임 분담의 문제 등을 보여준다. 이는 시청자에게 큰 공감을 자아내며,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라는 정서적 위로를 제공한다. 즉, 이혼은 이제 ‘실패’가 아니라, ‘다시 살아보기 위한 선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나 혼자 살아도 괜찮아, 오히려 더 좋아

    싱글라이프 콘텐츠는 이혼과 별개의 트렌드로 출발했지만, 결국 ‘혼자 사는 삶’에 대한 새로운 시선과 연결된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인 나 혼자 산다는 유명 연예인의 일상생활을 통해 혼자 사는 삶의 고충과 자유로움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이처럼 싱글 라이프 콘텐츠가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1인 가구의 증가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한국의 1인 가구 비중은 전체 가구의 약 34%에 달한다. 이는 결혼을 하지 않거나, 결혼을 늦추거나, 이혼한 후 혼자 사는 사람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싱글 라이프 콘텐츠는 더 이상 ‘특별한’ 삶이 아니라, ‘보편적인’ 삶을 조명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자아 실현에 대한 욕구다. 결혼이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된 지금, 많은 이들은 자신만의 삶을 꾸려가는 데 더 큰 가치를 둔다. 나 혼자 산다는 화려하거나 비범한 삶이 아니라, 소소한 일상과 자기 만족을 추구하는 삶의 방식을 보여주며 공감을 얻는다.

    셋째, 경제적·사회적 현실 때문이다. 청년층을 중심으로 결혼이나 출산에 대한 부담이 커지고 있다. 치솟는 집값, 불안정한 고용, 육아에 대한 사회적 지원 부족은 결혼을 ‘현명한 선택’이 아닌 ‘위험한 모험’으로 느끼게 만든다. 따라서 비혼과 1인 가구의 삶은 ‘자유롭고 합리적인 대안’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이에 대한 콘텐츠 소비도 지속되고 있다.

      이혼 콘텐츠의 빛과 그림자

      이혼 콘텐츠는 변화된 사회 인식에 부응해 현실을 조명하고 위로를 전하지만, 그 이면에는 여러 문제점도 존재한다. 특히 출연자 보호 문제는 방송계가 보다 깊이 있게 고민해야 할 중요한 사안이다.

      1. 사적 감정의 지나친 전시와 소비

      이혼 예능은 실제로 이혼한 커플이 다시 만나 과거의 관계를 회상하거나 갈등을 재연하는 형식을 자주 취한다. 이 과정에서 이혼의 원인, 감정적 상처, 가족 간 갈등 등 민감한 주제가 반복적으로 노출된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사실성’과 ‘리얼함’으로 느껴지지만, 출연자에게는 고통의 재연이 될 수 있다. 상처를 객관화하고 콘텐츠로 소비하게 만드는 구조는 그들의 회복을 지연시키며, 때로는 자존감과 프라이버시를 해치는 결과를 낳는다.

      2. 출연자 보호 장치의 미흡

      많은 이혼 콘텐츠는 ‘진짜 이혼 부부’의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출연자 보호를 위한 시스템은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촬영 중 감정이 고조되거나 상호 비난이 오가는 경우에도 충분한 심리 상담이나 사후 케어가 제공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또한 촬영이 종료된 이후에도 SNS를 통한 2차 가해, 루머 확산, 자녀에게 미치는 사회적 낙인 등 출연자들이 감당해야 할 문제는 상당하다.

      실제로 몇몇 프로그램에서는 출연자 중 일부가 방송 이후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거나, 과도한 노출로 인해 일상생활이 어려워졌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는 단순한 연예인이 아니라 일반인의 경우 더욱 심각할 수 있다. 이혼이라는 ‘실제 경험’을 꺼내 보이는 만큼, 제작진은 단순한 예능 이상의 윤리적 기준과 보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3. 이혼을 ‘트렌드’처럼 포장하는 위험성

      일부 콘텐츠는 이혼을 지나치게 미화하거나 ‘새로운 삶의 시작’이라는 메시지를 강조하면서, 실제 이혼 과정에서 겪는 복잡한 감정과 현실적 문제를 축소한다. 특히 경제적 고통, 자녀 양육 문제, 사회적 편견 등은 간과되기 쉽다. 이는 이혼을 단순히 ‘멋진 선택’으로 소비하게 만들며, 깊이 있는 성찰 없이 트렌드로 소비되는 부작용을 낳는다.

      4. 젠더 편향적 서사와 감정 왜곡

      일부 이혼 콘텐츠에서는 여성 출연자를 지나치게 감정적인 존재로 묘사하거나, 반대로 남성 출연자의 감정은 ‘이성적 판단’으로 포장하는 방식이 여전히 존재한다. 이처럼 젠더 감수성이 결여된 연출은 오히려 기존의 성 역할 고정관념을 강화하며, 사회적 편견을 심화시킬 수 있다.

      콘텐츠는 현실을 비추되, 생명을 다루듯 신중해야 한다

      이혼 콘텐츠와 싱글 라이프 콘텐츠는 단순한 트렌드를 넘어서, 한국 사회의 가치관 변화와 시대 흐름을 여실히 보여주는 거울이다. 누군가에게는 위로와 공감이 되고, 또 누군가에게는 살아갈 용기를 주는 콘텐츠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모든 현실은 누군가의 실제 삶이며, 콘텐츠는 그것을 비추는 도구인 동시에 때로는 상처를 만드는 칼이 되기도 한다. 특히 이혼 콘텐츠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현실’을 다루기 때문에, 단순한 흥미와 시청률에 매몰되지 않는 윤리적 기준과 제작 책임이 필요하다.

      감정의 진실을 보여주는 것과 감정을 소비하는 것은 다르다. 출연자의 서사를 통해 시청자에게 공감을 주는 것과 출연자의 고통을 흥밋거리로 만드는 것 사이에는 분명한 경계가 존재한다. 그 경계를 지키는 것이야말로, 지금 한국 방송 콘텐츠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slowbur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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