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프티 피프티가 신곡으로 돌아왔다. 한국 대중음악 시장, 특히 아이돌 산업은 ‘기적’이라는 말이 가장 자주 회자되는 영역이다. 셀 수 없이 많은 연습생들이 데뷔의 문을 두드리지만, 그중 단 몇 팀만이 대중의 주목을 받는다. 그리고 이들이 세계 무대에까지 이름을 올리는 일은, 확률적으로는 ‘기적에 가까운 우연’에 가깝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이 기적의 이면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를 더 이상 낭만적으로만 받아들이지 않는다. 성공한 아이돌 그룹의 이면에는 언제나 ‘소유권’과 ‘창작 권력’이라는 현실적 갈등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피프티 피프티 – 아이돌 산업의 민낯

최근 활동을 재개한 피프티 피프티(FIFTY FIFTY)는 이 산업의 민낯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2023년, 이들은 ‘큐피드(Cupid)’ 단 한 곡으로 글로벌 히트를 기록하며 ‘기적의 주인공’이 되었다. 자본력 열세의 중소기획사가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킨 이 사례는 업계 안팎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그 충격은 곧 실망과 분노로 바뀌었다. 제작 과정에서 깊은 유대 관계를 맺은 외주 프로듀서가 멤버들을 데리고 독립을 시도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소속사 어트랙트(ATTRAKT)와 외주사 더기버스(The Givers) 간의 법적 다툼으로 번졌다. 대중은 성공의 열광을 채 누리기도 전에, 아이돌이라는 상품이 ‘누구의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 다시 서게 되었다.
뉴진스 논란과 비교

비슷한 시기, 또 하나의 충격적인 사건이 K-팝 팬덤을 흔들었다. 하이브(HYBE) 산하 레이블 어도어(ADOR)의 대표이자 뉴진스(NewJeans)의 책임 프로듀서였던 민희진과 하이브 본사 간의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이다. 하이브는 민 대표가 멤버들과의 신뢰 관계를 이용해 회사를 장악하려 했다고 주장했고, 이에 민희진과 뉴진스 멤버들은 제작 자율성이 침해되었다며 맞섰다. 양측의 대립은 단순한 내부 마찰이 아닌, K-팝 산업의 구조적 권력 구도에 대한 본질적 질문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현재, 양측은 법적 다툼을 벌이며 대중의 신뢰 역시 양분된 상태다.
피프티 피프티와 뉴진스의 사례는 언뜻 유사해 보인다. 모두 ‘자본을 쥔 주체’와 ‘창작을 주도한 인물’ 간의 충돌이며, 모두 멤버들과의 유대 관계가 쟁점이 되었다. 그러나 본질은 다르다. 피프티 피프티의 경우, 외주사가 제작 성과를 이유로 멤버 이탈을 유도하려 한 ‘이권 중심의 갈등’에 가깝고, 뉴진스 사건은 대형 기획사 내에서 독립된 제작자가 ‘창작의 주도권’을 지키려는 ‘권력 중심의 충돌’로 볼 수 있다.
피프티 피프티는 언더독이었다
피프티 피프티는 분명 언더독이었다. 그들의 성공은 자본력이 아닌, 기획력과 음악 콘텐츠에 기반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성공은 곧바로 내부 분열로 이어졌고, 팀 자체가 해체 위기에 놓였다. 이후 어트랙트는 멤버 전면 교체라는 초강수를 두며 팀을 재정비했고, 최근 새 싱글 [LOG IN]을 통해 활동을 재개했다.

이번에 발표된 타이틀곡 ‘푸키(PUKI)’는 히트곡 ‘큐피드’와 유사한 포맷으로 구성되어 있다. 반복적인 후렴구, 경쾌한 리듬, 중독성 있는 멜로디 등 대중성이 강조된 사운드는 분명 의도된 공식 재현이다. 완성도는 나쁘지 않지만, 창의적 확장성은 느껴지지 않는다. ‘한 번 먹혔던 전략을 다시 쓰자’는 상업적 판단이 우선된 듯하다.
반면 수록곡 ‘미드나이트 스페이셜(Midnight Special)’은 더 흥미로운 인상을 남긴다. 뉴진스를 연상케 하는 복고풍의 사운드와 키치한 감성, 느긋한 템포와 소녀적인 무드가 돋보인다. 그러나 그 감각은 다소 모방에 가깝다. 뉴진스가 만들어낸 미학적 정체성과 스토리텔링을 단순히 스타일로만 가져온다면, 그것은 ‘참조’가 아니라 ‘재현’일 뿐이다. 피프티 피프티가 진정한 재기를 원한다면, 자신들만의 서사를 다시 써 내려가야 한다.
뉴진스, 총체적 창작물
뉴진스의 경우, 데뷔부터 확고한 방향성과 아이덴티티를 구축해왔다. 민희진이라는 제작자가 구현한 미니멀한 사운드, 감각적인 콘셉트, 일상적이면서도 감성적인 서사 구조는 단숨에 뉴진스를 K-팝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만들었다. 단순히 곡 하나가 아니라, 세계관과 정체성, 팬들과의 관계까지 모두 기획된 ‘총체적 창작물’이었다. 최근 K-팝 시장에 등장하는 신인 걸그룹들 대부분이 뉴진스의 잔향을 품고 있다는 사실은, 민희진의 제작력이 얼마나 강력한 충격파를 일으켰는지를 증명한다.
아이돌은 누구의 것인가?
이쯤 되면 우리는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아이돌은 누구의 것인가? 투자를 감행한 자본의 것인가, 아니면 콘텐츠를 기획하고 세공한 제작자의 것인가? 혹은 그들을 사랑하고 지지하는 팬들의 것인가? 이 질문에는 단 하나의 정답은 없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있다. 단지 돈을 많이 들였다고 해서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탁월한 제작자 없이는 단 하루도 대중의 관심을 붙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자본과 제작은 상호보완적 관계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 균형이 깨질 때, 갈등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민희진은 단순한 제작자가 아니다. 그는 K-팝이 상업적이고 획일화된 성공 공식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인물이다. 그렇기에 지금의 상황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 구조 자체의 문제로 이해되어야 한다. 창작자가 살아남기 어려운 구조라면, 언젠가는 대중도 진정한 새로움을 만나기 어렵게 된다.
언더독의 승리?
나는 개인적으로 ‘언더독’의 승리를 바란다. 뉴진스는 언더독이 아닐지라도, 민희진은 확실히 이 산업 안에서의 언더독이다. 그녀가 이 권력 싸움을 뚫고 다시 한 번 대중에게 창조적 해답을 제시하길 바란다. 피프티 피프티도 마찬가지다. 다시 시작한 이들이라면, 단지 과거의 복제가 아니라, 새로운 자기서사를 쌓아가는 데 집중해야 할 시점이다.
아이돌 산업은 여전히 꿈을 파는 시장이다. 하지만 그 꿈은 누군가의 손에 쥐어지는 ‘소유물’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 창작물’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본과 제작은 서로를 견제하면서도 존중해야 한다. 그래야만 또 다른 기적이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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