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21일,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은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에게 깊은 슬픔을 안겨주었을 뿐 아니라, 인류 보편의 가치와 종교의 존재 이유를 다시금 되새기게 하는 순간이었다. ‘가난한 이들의 교황’, ‘변두리의 목자’로 불렸던 그는 단순한 종교 지도자를 넘어, 사회적 정의와 연대를 실천한 도덕적 나침반이었다. 그의 죽음을 통해 우리는 종교가 이 시대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으며, 특히 한국 사회에서 종교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점검하게 된다. 특히 최근 한국 기독교계의 극우화 현상은 종교 본연의 역할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에서 깊은 우려를 자아내며, 더 진지한 성찰을 요구한다.
종교의 본질과 프란치스코 교황의 유산

프란치스코 교황의 삶은 종교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주었다. 그는 가난한 이들, 난민, 환경, 청년, 약자, 그리고 타종교인들과의 대화를 중시하며, 교회를 “상처 입은 이들을 위한 야전병원”으로 정의했다. 종교는 곧, 위로와 회복의 공간이며, 사랑과 연대의 행위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그의 메시지는 전 세계 신자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이는 산업화와 도시화, 그리고 디지털화로 인해 인간관계가 파편화되고, 정체성과 소속감을 잃어가는 현대 사회에 특히 유효한 메시지다. 한국 사회 역시 갈등과 경쟁이 극심한 구조 속에서 심리적 고립과 정서적 피로가 누적되어 있다. 이럴 때 종교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공동체적 연대감을 회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윤리적 기준으로서의 종교의 책무
프란치스코 교황은 종교 지도자의 사회적 책임을 누구보다 강하게 인식한 인물이었다. 그는 부패와 불평등을 비판하고, 사회 정의 실현을 위한 적극적 행동을 촉구했다. 이는 단지 신앙의 차원을 넘어서 윤리적 나침반으로서의 종교의 역할을 강조한 것이었다.
한국 사회는 반복되는 정치적 스캔들, 재벌 중심의 불공정 경제 구조, 극심한 양극화로 인해 시민들의 윤리적 피로도가 높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종교는 도덕성과 정의를 되새기게 하고, 사회 전체의 윤리 기준을 세우는 데 중요한 축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이상과는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
한국 기독교의 극우화와 그 문제점

최근 한국 기독교계는 정치적 극단성과 밀접하게 결합하면서 종교 본연의 역할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일부 대형 교회를 중심으로 반공주의, 민족주의, 배타적 신앙관이 결합된 ‘극우적 신앙 정치화’ 현상이 뚜렷하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정부 방역 정책에 대한 극단적 반대, 혐오적 언사와 허위정보 유포, 특정 정치 세력과의 노골적인 결합은 많은 시민들에게 종교에 대한 회의와 반감을 키웠다.
이러한 극우화 현상은 복음의 본질인 사랑, 자비, 포용과는 거리가 멀다. 종교가 사회 갈등의 해소자가 아닌 촉진자로 작용할 때, 신뢰는 무너지고 종교는 도덕적 권위를 상실하게 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강조한 ‘변두리를 향한 시선’과는 정반대의 방향이다. 그가 기득권을 비판하고, 사회적 약자와의 연대를 강조한 이유는 종교가 본질적으로 권력과 결합해서는 안 되며, 언제나 약자의 편에 서야 한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국 기독교가 다시금 신뢰를 회복하고 공적 윤리의 중심으로 서기 위해서는 극우 정치와의 거리두기가 필요하며, 복음의 본질을 되찾는 자기반성이 선행되어야 한다.
청년 세대와의 소통, 그리고 새로운 종교의 언어
현대 한국 청년들 사이에서 종교는 점점 더 먼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특히 기독교에 대한 반감은 보수화와 정치적 편향으로 인해 더욱 깊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는 종교의 위기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에 맞는 ‘종교적 언어’를 찾지 못한 결과이기도 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SNS를 통해 청년들과 소통하고, 청년들을 단지 ‘미래의 신자’가 아닌, 오늘을 함께 살아가는 ‘현재의 동역자’로 인정했다. 한국 종교계도 형식과 제도 중심에서 벗어나, 청년들의 삶과 고민에 귀 기울이고, 그들과 함께 존재의 의미를 성찰하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기성세대의 권위와 통제 대신, 공감과 동행이 중심이 되는 신앙 공동체로의 전환이 절실하다.
다문화 사회 속 종교의 역할

한국은 이제 더 이상 단일 민족, 단일 문화의 사회가 아니다. 이주민, 다문화 가정, 외국인 노동자 등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이 속에서 종교는 포용과 상생의 가치를 실현하는 핵심적인 사회적 자산이 될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타종교와의 대화를 중시하며, 종교 간 평화와 연대를 실천해 왔다. 그의 삶은 종교가 차별과 배제를 정당화하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되며, 오히려 다양한 문화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한국의 종교도 이제 ‘우리끼리’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위한 종교로서 거듭나야 한다.
실천으로 증명되는 신앙의 진정성
종교는 말보다 삶으로 증명되어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치스러운 교황궁을 거부하고, 소박한 생활을 선택했다. 그리고 환경 문제, 인권, 빈곤 등 전 지구적 문제에 대해 구체적 행동으로 응답했다. 그의 이러한 삶은 신앙이 단지 내면의 구원에 머무르지 않고, 세상의 고통에 함께하는 방식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한국 종교계, 특히 기독교는 이러한 실천적 신앙의 회복이 필요하다. 단순히 예배당 안의 신앙이 아닌, 거리에서, 현장에서, 사회 속에서 드러나는 신앙이어야 한다. 특히 기후위기와 같은 인류적 과제에 종교가 목소리를 내고, 사회적 약자를 위한 공적 실천을 확장해나가는 것이 그 시작점이 될 수 있다.
주요 단락 요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