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만에 지하철 출근길, 오래된 루틴과 마주하다

갑작스럽게 지하철 출근을 하게 됬다. 대부분의 프로젝트가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 이뤄지다 보니, 부산에 거주하면서도 수도권 이동은 이제 익숙하다. 이번 미팅은 출근 시간대, 브런치를 겸하자는 요청이었지만,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가볍게 차 한 잔 하며 인사나 나누자는 제안처럼 들렸지만, 실제로는 전략적인 키워드와 시장 방향성까지 논의가 필요한 본격적인 비즈니스 미팅이었다.

미팅에 앞서 나는 클라이언트가 현재 운영 중인 온라인 마케팅 활동과 웹사이트 구조, 최근 게시된 콘텐츠의 톤앤매너를 분석했고, 핵심 키워드도 미리 정리해 두었다. 결코 즉흥적인 만남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미팅 당일의 이동 수단 선택은 더욱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자칫 교통 체증에 걸려 약속 시간에 늦게 되는 상황은 피하고 싶었다. 서울의 출퇴근 시간 정체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단 10분의 지연이 모든 흐름을 깨뜨릴 수 있는 중요한 자리였기에, 나는 운전 대신 지하철 출근을 선택했다.

10년 만에 다시 마주한 ‘지하철 출근길’

지하철 출근

거의 10여 년 만에 서울의 출근길 지하철을 이용하게 됐다. 당시의 기억은 또렷하다. 매일같이 붐비는 지하철에 몸을 실으며 나는 독서를 했다. 스마트폰이 지금처럼 모든 콘텐츠를 담고 있지 않던 시절, 지하철 독서는 내게 유일한 자기 계발의 시간이었다. 하루 두 시간의 통근 시간은 일주일이면 열 시간, 한 달이면 마흔 시간이 되었고, 나는 그 시간을 활용해 수많은 책을 읽었다.

그건 단순한 독서가 아니었다. 자기 확장의 루틴이자, 고된 일상 속에서 유일하게 나만을 위한 시간이었다. 그 시절에는 그렇게 책을 읽지 않으면 뭔가 중요한 걸 놓치는 듯한 초조함이 있었고, 책을 읽고 나면 나 자신이 조금은 더 단단해진 느낌이었다.

활자를 넘기기 힘든 지금의 나

옛기억을 떠 올리며 그동안 마무리 짓지 못했던 책을 읽어보자 했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열차에 오르자마자 밀려드는 인파, 더 이상 책을 읽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풍경, 그리고 내 눈앞의 흐릿한 활자. 나는 책을 꺼냈지만 글자가 또렷하지 않았다. 초점을 맞추느라 눈을 가늘게 뜨고 자세를 조정했지만, 쉽지 않았다. 노안. 이 단어가 불쑥 떠올랐다.

이전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고개를 숙이고 겨우 몇 페이지를 읽고 있는데, 지하철은 회전 구간에 접어들었고 나는 중심을 잃기 직전이었다. 자세를 유지하느라 온몸의 근육이 긴장했고, 아직 더운 계절이 아님에도 이마에는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더는 책을 읽을 수 없었다. 문득 내게 묻는다. 이렇게 힘들었었나?

변한 풍경, 변하지 않은 피로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쇼츠 영상, 실시간 뉴스, 누군가의 SNS. 짧고 빠르게 소비되는 콘텐츠가 세상의 흐름을 지배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지하철 좌석마다 책을 읽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제는 보기 힘든 풍경이 됐다. 정보는 더 많아졌지만, 그 깊이는 얕아졌다. 활자의 무게는 사라지고, 휘발성 정보가 하루를 이끈다.

그 와중에도 몇몇 사람들은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인 채 졸고 있었다. 지쳐 보였다. 고개가 휘어져 옆사람에게 기울었지만 그 사람은 아무렇지 않다. 누군가 나에게 기댄다고 했어도 나 역시 불편하지 않았다. 삶의 무게를 아는 사람만이 갖는 이해였다. 나도 그렇게 살았다. 하루를 버티고, 다시 또 시작하기 위해 눈을 붙이던 그 시절의 내가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체력보다 큰 건, 심리적 소진

다시 이 시간을 살아보니, 그때 내가 얼마나 강했는지 실감이 난다. 따로 운동을 하지 않아도 체중이 쉽게 늘지 않았던 이유. 바로 출퇴근 자체가 체력 소모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힘든 건 따로 있다. 바로 ‘심리적인 방어’. 수많은 사람과 물리적으로 부대끼며 낯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무언가에 계속 대비해야만 하는 긴장 상태가 계속된다. 그것이 얼마나 소모적인 일인지 오늘 다시 실감했다.

그럼에도 나는 책을 읽으려 했다. 몇 페이지라도. 그 시절에는 그렇게 몇 년이고 반복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대단한 일이다. 나를 지탱해 준 건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그런 루틴을 통해 얻어진 자기 확신이었다.

‘최선’이라는 이름의 선택들

지금의 나는 그때와는 다르다. 다시는 그 시절의 에너지를 그대로 낼 수 없다는 걸 인정하게 된다. 그러나 그건 패배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반복되는 삶의 굴레가 생각보다 더 길어질 수 있다는 걸, 그때 알았더라면 인생의 항로를 조금 다르게 설계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게 최선의 선택이었고, 지금의 나 역시 또 다른 최선을 찾아가는 중이다.

삶은 늘 최선을 요구한다. 때론 그것이 과한 무게로 다가오기도 하고, 때론 그 무게가 나를 지탱하기도 한다. 중요한 건, 지금 내가 그 방향을 스스로 선택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오늘 지하철에서 책을 펼친 나는, 다시 한번 묻는다. 지금 이 삶은 정말 나의 선택인가.

긴장감 없이도 의미 있는 하루

오늘의 미팅은 나에게 어떤 결과를 안겨줄지 아직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예전처럼 불안에 떠는 긴장감은 없었다. 사람을 대하는 여유, 콘텐츠를 설계하는 관점, 전략을 설명하는 논리 모두 이전보다 성숙해졌다. 나 자신을 증명하기 위한 과잉이 사라진 자리에는, 묵직한 내공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인지 오늘 하루가 조급하지 않았고, 그 점이 오히려 행복했다.

나를 되찾는 작은 의식

삶은 결국 반복이다. 하지만 그 반복 속에 의미를 부여하면, 그것은 루틴이 아니라 의식이 된다. 오늘 아침 지하철 안에서 내가 책을 펼친 건, 단지 과거의 습관을 되살리려는 시도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 삶의 무게중심을 다시 확인하고, 나 자신을 되찾으려는 작은 의식이었다.

더 이상 하루 두 시간씩 책을 읽지 않더라도, 단 10분의 집중이 그때와 같은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나는 여전히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지하철에서의 경험은 그 자체로 나를 다시 정리해주었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에필로그 : 오늘을 기록하는 이유

서울의 복잡한 지하철, 수많은 사람들, 변해버린 독서 문화, 스마트폰에 고정된 시선들. 그 속에서 다시금 책을 펼쳐든 나는,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사이를 오가며, 여전히 나만의 루틴과 가치관을 점검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오늘을 살았다. 조금은 지치고, 조금은 무겁지만, 나를 선택한 하루였다.

그리고 그 하루를 이렇게 기록한다. 기억하려고. 놓치지 않으려고. 다시 한번, 지금의 내가 가고 있는 이 방향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믿기 위해서.

slowburger
slowburger

댓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