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의 이정재 주연, 스타워즈
여러 민족의 이민자들이 모여 만든 미국에는 고대 국가들처럼 뿌리 깊은 건국신화가 없다. 하지만 그런 빈자리를 채워준 것이 바로 영화 ‘스타워즈’다. 단순한 스페이스 오페라를 넘어, 이 시리즈는 미국인들에게 하나의 현대적 신화로 자리매김했다. SF라는 장르에 속하지만, 물리 법칙보다는 ‘포스(Force)’라는 초월적 개념을 주요 메타포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신화적 구조를 더욱 강화했다.
“I’m your father.”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연상시키는 이 대사는 팬들을 극도의 긴장감 속으로 몰아넣었다. 혈연, 숙명, 선택이라는 테마가 중첩된 이 장면은 스타워즈가 단순한 오락영화를 넘어선 결정적인 증거였다.
동양인의 제다이 캐스팅과 문화적 충돌

스타워즈는 디즈니가 루카스필름을 인수한 이후 외전과 드라마로 영역을 확장했다. 최근 공개된 시리즈 ‘애콜라이트(The Acolyte)’에서는 한국 배우 이정재가 주연급 마스터 제다이로 등장했다. 그러나 이 캐스팅은 일부 시청자들 사이에서 인종차별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미국의 건국신화’라 불리는 이 작품에 동양인이 등장했다는 점, 그리고 그것이 ‘마스터’ 역할이었다는 점이 비판의 대상이 된 것이다. 그러나 다인종 사회인 미국에서 이런 반응이 나온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이정재는 이에 대해 “다양한 관객의 반응이라 생각한다”며 담담히 응수했다. 이는 단지 관습에서 벗어난 캐스팅에 대한 반응일 수도 있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익숙하지 않음’을 불편해한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이정재 배우의 상징성

이정재를 세계적으로 알린 작품은 단연 ‘오징어 게임’이지만, 국내 팬들에게 그의 진면목을 각인시킨 작품은 영화 ‘관상’ 속 수양대군 역이다. “내가 왕이 될 상인가”라는 대사는 전국민의 유행어가 되었고, 이정재의 존재감을 새롭게 조명하게 만들었다.
영화 속에서 그는 중반이 넘어서야 등장했지만, 강렬한 외모와 분위기로 극 전체를 압도했다. 쌍꺼풀 없는 날카로운 눈매, 광대와 입 주변의 흉터, 단단하게 조여진 턱선은 그가 연기한 권력자의 모습과 놀랍도록 일치했다. 흥미롭게도 데뷔 전 그는 코 밑에 있던 점을 제거했다고 한다. 누군가는 그 덕에 ‘모래시계’에서 제이라는 역할을 맡을 수 있었다고 평하기도 한다.
관상의 오래된 뿌리
관상(觀相, physiognomy)은 얼굴이나 신체적 특징을 통해 성격이나 운명을 예측하려는 시도이다. 과학적 근거는 부족하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관상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다. 고대 중국, 인도, 그리스 등 다양한 문명에서 관상은 중요한 판단 기준이었고, 때로는 통치자의 자질을 가늠하는 잣대이기도 했다.
한국 사회에서도 관상은 일상적인 대화 주제가 되었고, ‘왕이 될 상인가’라는 표현은 그 연장선상에 있다. 외모를 통해 사람의 내면이나 운명을 가늠하려는 시도는 인간의 본질적 불안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세계에 대한 불안이 ‘형태’라는 손에 잡히는 신호로 수렴될 때, 관상은 그 틈새를 파고드는 도구가 된다.
과학적 시도와 한계

관상이 단순한 미신에 그치지 않도록 하려는 과학적 시도도 있었다. 예를 들어, 얼굴의 대칭성이나 눈의 크기, 턱선과 같은 외형적 특징이 성격이나 사회적 지위, 지능과 어떤 상관관계를 가지는지 탐색한 연구들이 존재한다. 일부는 얼굴이 대칭적일수록 사회적으로 긍정적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는 대부분 방법론적으로 불완전하다. 통제되지 않은 환경에서 이루어졌거나, 일관된 반복 실험이 부족했고, 편향적 시각이 개입되기 쉬운 분야였기 때문이다. 즉, 관상이라는 개념 자체가 인간의 무의식적 편견이나 선입견과 너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 객관적 측정이 어렵다.
익숙함과 편향, 그리고 인간의 본능
인간은 본능적으로 세상을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착한 사람은 복을 받고, 나쁜 사람은 벌을 받는다’는 단순한 윤리의 틀은 불확실한 현실에서 정신적 안전망이 된다. 그런데 그런 질서가 무너지는 상황, 예컨대 ‘착한 사람이 불행한 삶을 산다’는 장면에 직면하면 사람들은 관상이라는 틀을 들여다보게 된다.
‘복 없는 상이라서’, ‘사나운 인상이어서’라는 해석은 세계의 모순을 설명하려는 심리적 기제일 수 있다. 우리가 무너진 질서를 해체하기보다는, 기존의 관념을 유지하려는 방향으로 의미를 재구성하려는 것은 어찌 보면 인간다운 선택이다.
배타성과 사회적 체계
익숙함은 배타적이다. 익숙한 관념은 예외를 용납하지 않으며, 낯선 것은 쉽게 배척된다. ‘마스터 제다이는 백인 남성’이라는 무의식적 틀 안에서 이정재의 등장은 불편함을 유발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불편함을 넘어 새로운 세계를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스타워즈가 말하는 성장과 변화의 핵심이 아닐까.
사람들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의미를 부여하려 애쓴다. 그리고 그 의미를 체계화하고, 집단적으로 공유하며, 그 체계 안으로 더 많은 사람을 끌어들인다. 그렇게 만들어진 ‘세계들’은 서로 충돌하고 영향을 주고받는다. 나는 그 과정을 통해 더 넓고 풍요로운 세계가 만들어진다고 믿는다.
그래서 비록 나는 이과생이지만, ‘관상’이라는 비과학적 전통에도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그것은 우리의 불완전한 인지 방식과 편향된 세상 이해가 만들어낸 문화적 상징이자, 익숙함이라는 인간의 습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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