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오십대 봄, 한 걸음을 내 딛기까지

“오십대 봄은 따뜻한 계절이 아니라, 잔인한 계절이다.”
이 말이 유난히 공감되었던 시기가 있었다. 아니, 바로 지금이다.

거리는 따뜻해지고, 꽃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피어난다. 사람들은 한껏 가벼워진 옷차림으로 나들이에 나서고, SNS 속엔 벚꽃 사진과 캠핑 사진이 넘쳐난다. 그런데 나는. 도무지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 활기 속에서 나는 자꾸만 내 그림자를 본다.

“나는 왜 이러고 있나?”
“어쩌다 이렇게 살고 있나?”

봄은 말한다. 모두가 살아난다고. 그런데 나는 점점 꺼져가고 있었다.


생각은 깊고, 마음은 무겁고, 몸은 무기력했다

사람들은 나에게 종종 이런 말을 한다.
“생각이 너무 많으신 것 같아요.”
“좀만 단순하게 생각해보세요.”
고맙긴 하다. 걱정해주는 마음은 느껴진다. 그런데 그 말이 나를 더 괴롭게 할 때도 있다. 단순하고 싶지 않아서 복잡하게 사는 게 아닌데, 머릿속에서 멈추지 않는 생각들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계속해서 솟아난다. 끊이지 않는 자책, 후회, 그리고 막연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까지.

나는 올해로 오십을 넘겼다. 흔히들 말하는 ‘오대남’, 오십 대 남성이라는 이름표를 달게 된 나이. 언젠가부터 이 호칭이 씁쓸하게 다가온다. 세월은 흘렀지만, 그만큼 무언가 이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나를 소개할 때 내세울 이력도, 타인에게 부러움을 살만한 성공도 없다. 그저 어떻게든 살아왔고, 오늘도 하루를 버티고 있다.
그걸 ‘평범한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사회는 냉정하다.
열심히 살아왔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위로받는 건 아니다.
어느새 나는 루저가 되었고, 그 단어를 받아들이는 데에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펜을 들었다, 그러나 생각은 또 제자리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펜을 들었다.
나 자신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 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있지?
  •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 정말 하고 싶은 건 뭘까?

그렇게 질문을 던지고 몇 줄 써 내려갔다. 그러나 글은 곧 멈췄다. 몇 줄 더 끄적이다 보면 결국 같은 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마치 고장 난 컴퓨터가 같은 화면만 무한반복하는 것처럼, 나의 생각도 같은 고민, 같은 회한, 같은 결론으로 맴돌기만 했다.

그때 문득, 인공지능에게 물어보면 뭔가 힌트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요즘 세상이 다 그렇지 않은가. 답답하면 챗봇에게 물어보는 시대.
나는 지금까지의 삶과 일에 대해 적어 내려가고, 앞으로 뭘 하면 좋겠냐고 질문했다.

돌아온 답은 무척 정리된 형태의 조언이었다. 어디서 들어본 말들.
“관심 분야를 좁혀보세요.”
“자신의 강점을 살려 퍼스널 브랜딩을 시작해보세요.”
“경험을 콘텐츠로 재구성해보세요.”

솔직히 말하면 짜증이 났다. 내 안의 고통과 복잡한 감정들은 데이터 몇 줄로 환원될 수 없는 것이었다. 결국, 대화창을 닫았다.


산에 오른다는 것, 그리고 나를 만나러 가는 길

오십대 봄

하루를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보낼 때가 잦아졌다. 몸도 점점 무거워졌고, 건강 상태도 예전 같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운동을 꾸준히 하라”는 당연한 말을 했고, 나는 마지못해 동네 뒷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처음엔 억지였다. 귀찮고, 하기 싫고, 왜 내가 이걸 해야 하나 싶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이상하게 그 산길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아무 생각 없이 걷다 보면 마음이 잠잠해졌다.
숨이 차오르고, 땀이 배어나오고, 바람이 목덜미를 식혀주는 그 순간들 속에서 나는 비로소 내 감정을 마주할 수 있었다.
“아, 내가 정말 힘들었구나.”
“이렇게 멍하니 있는 게 필요한 시기였구나.”

산에서는 아무도 나를 평가하지 않는다.
누구도 내 나이나 성과를 묻지 않는다.
그저 한 걸음씩 올라가는 것만으로,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한다.


결국 중요한 건 ‘한 걸음’이었다

나는 결국 문제를 알았다.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온갖 시뮬레이션과 상상, 후회와 자책만 반복했을 뿐.
행동이 없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오랫동안 연락하지 못했던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색하고, 꺼려졌고, 미련이 남았지만… 그 감정 그대로 안고 전화를 걸었다.
짧은 대화였지만, 그 한 통이 나를 조금 가볍게 했다.

정리하지 못했던 신변도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지저분한 폴더, 뒤죽박죽인 메모, 미뤄온 일들 하나하나를 쳐다보았다.
크게 바뀐 건 없지만, 무언가 다시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더 먼 산으로 가기로 했다.
예전에도 그랬다. 익숙한 루틴을 벗어나 조금 낯선 장소에서 새로운 공기를 마시면, 늘 내게 변화가 찾아왔다.
이번에도 그런 변화가 오리라는 기대를 품고 있다.


지금, 나는 ‘브랜딩’이 아니라 ‘회복’을 한다

요즘 ‘퍼스널 브랜딩’이라는 말이 참 많이 들린다.
자신의 이름을 브랜드로 만들고, 자기 이야기를 콘텐츠화하고, 영향력을 키우고… 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 그 전에 할 일이 있다.

먼저, 나를 다시 존중하는 것.
다시 ‘나’라는 존재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

성공도 아니고, 스펙도 아니고, 팔로워 수도 아니다.
그냥 이렇게 불안하고 흔들리는 나조차도 충분히 의미 있고, 고유한 존재라고 다시 인정해주는 일.
그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브랜딩이다.


오십대 봄 – 당신에게도 ‘한 걸음’이 필요한가요?

혹시 지금, 봄이 당신에게도 무겁게 느껴지나요?
세상은 바쁘게 굴러가는데, 나만 멈춰 있는 것 같은 느낌.
과거는 자꾸 발목을 잡고, 미래는 막막하게만 느껴질 때.

그럴 땐 저처럼 작은 산을 올라보는 건 어떨까요.
안부 전화 하나, 오래된 메모장 정리, 책상 위 먼지 닦기.
거기서부터 모든 변화가 시작될 수 있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속도와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걸 받아들이는 데 50년이 걸렸지만, 늦지 않았다고 믿습니다.

지금 당신의 계절이 힘들다면, 괜찮습니다.
봄은 언젠가 또 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당신의 마음속에서도 다시 꽃이 피어날 것입니다.

slowbur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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